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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대책없이, 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타인을 믿어버리는 그 마음이 난 신기하다

동물이나 어린 아이가 그러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나 겨를 없이 그냥 품게 되는데
어리지 않은 이가 그러는 건 사실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내겐 그 마음의 ‘이해’가 필요하다

왜 저렇게 덜컥 믿어버리는 걸까
혹은 어째서 날 덜컥 믿는 듯이 느껴지는걸까,
확실한건

기쁘다.
고맙다.
그리고, 부럽다.

스스럼 없이 자신을 열어보이는 이를 마주하면
겁이 나지만, 동시에 고맙고 또 부럽다
나는 그럴 수가 없는데.

아마 상대가 내게 믿음을 주지 못해서가 아닐 것이다
내가 받지 못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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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틀리다, 옳다 그르다, 그렇다 아니다

삶의 방향이나 행동 지침에 대해
‘이것이 맞다’고 말하긴 꽤 어렵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고 말하기는 상대적으로 쉬운듯 하다
‘생명이라면 무엇이든 존중받는 게 맞아’라는 말보다 ‘생명을 그렇게 함부로 취급하는 건 아닌 것 같아’라는 말이 더 포괄적이고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여태껏
타협의 여지가 없다고 여겨온 신념들을 돌이켜보면
타인의 삶에서 꽤나 적절히 응용되고 있으며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썩 괜찮은 삶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결혼적령기에 적당한 사람을 골라 결혼하려는,
자신의 꿈보다 스펙쌓기에 심혈을 기울여 늦지않게 대기업에 입사한,
스톡홀름신드롬에 가까운 결혼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는,

삶을 대하는 방식이란 사람 수 만큼이나 다양하니까
그만큼 다양한 삶의 양태가 빚어지는 것이려니 짐작하면서도
타이밍이라는 것이 굉장한 조합을 만들어내는구나 싶다
동시에, 난 참 타이밍을 어그러뜨리는 재주가 있구나 싶기도 하고.

물론 멀리서 띄엄띄엄 보는 타인의 삶이 좋아보이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라지만서도
나의 삶이 누군가에게 좋아보일 것 같지는 않다
그러기 위해 위장하는 삶을 원치 않기도 하지만.

내 삶에도 그럭저럭 괜찮은 무언가가 있을까?
내 삶에도 그럭저럭 괜찮은 무언가를 만들 수 있을까?
무얼 만들면 좋을까?
어떻게 사는 게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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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남자

남자1.

한밤 중에 메세지를 보낸 그는, 끝내고 싶은 관계를 놓지 않으려는 그녀에게 상처주지 않을 방법이 없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간, 좋지 않은 방법으로라도 끝내버린 관계들이 자신에게도 너무 힘들었다는 점을 들면서 다른 방법은 뭐가 있을지 고민하는 듯 했지만
그저 자신이 상처받지 않을 방법을 알고 싶어했던 것 같았다
자신이 착한 척 하는 걸 알고 있었고, 발목을 끊든 그 발목을 잡고 있는 손목을 끊든 상처를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내 느낌으론, 그녀가 자길 차주었으면 하는 것 같았지만 그렇게 상황을 만들 결단력도 없이 헤매고 있는 듯 했다


남자2.

얼마 되지 않은 연인에게 이러저러한 핑계로 연락을 않다가, 이별의 뜻을 품은 연락을 받고 금세 ‘너 좋을 때로 생각해’라고 답장해버린 그 속마음.


남자3.

좋아하고 있는 연인의 갑작스런 이별통보에 축 늘어져서는,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고 싶었다며 집을 찾아가 애원해보기도 하고 잃어버렸다는 전화를 찾아 서성이기도 했다며 정말로 전화를 잃어버린건지, 실은 다른 사람이 생겼으면서 어설픈 구실로 자신을 떼어내려 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워하고 있었다
좋아하니까 질투나 의심같은 게 가능한 것일테지만 그런 감정소모는 그만두고 지워버렸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