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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귓속을 만졌다
자꾸 귓속을 만지고 싶었다

오래 전에 잊은 버릇인데, 왜 잊혀졌는지는 모르겠다
엄마가 절실히 필요한 시절에 잠들기 전이면 꼭, 귓속을 만졌다
귓속을 만지고 싶어했다

내 귀는 꽤 작은 편이라, 어릴 땐 면봉도 잘 들어가지 않았고
가끔 엄마 무릎을 베고 귀를 파는 호사를 누릴 땐 성냥으로 살금살금
다 큰 지금도 면봉이 여유있게 드나들지는 못한다

작은 귓구멍으로 새끼손가락을 넣으면
손가락 끝에 닿을 듯 말 듯한 뭔갈 느낄 수 있었다
그걸 좀 더 제대로 만져보고 싶어서
손가락질을 더 열심히, 끈질기게 하다 잠들면
아침엔 귀에 찐덕한 게 흘러나와있곤 했다
잠에서 깨자마자 양말을 신던, 늘 아주 뜨거웠던 방
화장실은 후레쉬를 들고 밖으로 나가야했고
끓인 물을 수돗물에 섞어 씻었던 작은 판잣집.

지금 사는 집은, 이사한지 갓 한 달이 넘었는데
여러가지가 좋다
일단, 예전집은 2층이었고 창문으로 하늘이 보인데다
은은하게 전철 다니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
다만 방범창이 없어 조금 불안했는데, 방범창이 있었대도
창을 감상하기 삭막했을 것 같다

지금 집은 4층이고, 방범창 없이도 불안하지 않게 창을 감상할 수 있다
베란다가 있고 그 외에 창문이 2개나 더 있어서,
빨래를 방 안에 널지 않아도 되고
오늘같은 날씨라면 아침에 넌 빨래가 저녁에 말라있다
물론 얼마 전 바퀴벌레 등장으로 식겁하긴 했다(그래서 바퀴벌레약을 사왔다)
부엌이 좁고 조리대가 없지만, 도마를 놓을 수 있게 스텐레스봉을 사두었다
(물론 아직까지 요리를 해보지 않았다 간단한 샐러드 외에)
천장이 예전집보다 높아서 더 넓어보이고, 실제로도 조금 넓은 것 같단다
두 명이나 누울 수 있으려나, 싶은 작은 평수지만
나 하나 쉬기엔 부족하지 않다
마음 편히 알몸으로 돌아다닐 수 있으니, 그거면 됐다

아직 세간살이를 갖추지도 못하고
정리도 덜 되서 꼭 피난이라도 온 것 같은 꼬라지지만
벌써, 조금씩 정이 드는 것 같다


누가, 여건상 고치지도 바꾸지도 못한 채 십 년 넘게 쓰던 냉장고를 버리면서
울컥했다는 트윗을 봤다
물건에 대한 애착이 꽤 있는 편이라, 저 얘기에 한 편으론 이해가 가면서
정말 우리는 물건에 정이 드는걸까, 하고 생각해봤다
물건이 우리에게 정을 느끼게 해줄 수 있는 존재일까, 과연.

손때 묻은 가구나 소지품을 보고
몇 년을 써왔구나, 이거 생겼을 때 엄청 좋아했었는데,
혹은 이걸 그 누구도 참 좋아(싫어)했는데. 같은 감상을 가질 것 같다
말하자면 추억이 어린다
누구랑 자주 다니던 골목이라던가, 자주 먹었던 음식이라던가.
그런 건 일종의 매개물이지 그 자체가 어떤 감흥을 주진 않는 듯 하다
그러니까, 나의 (힘겨웠을) 과거를 버티면서 그 시간을 함께한 동지같은 존재감이 아닐까
현실감을 주는 건 커다란 공간이나 큰 사건이 아니라, 작고 사소한 것들이니까.


이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된 때가 장마철이었고, 예상치 못한 이사였던데다
여러가지 일들이 겹쳐 정신이 없었는데
다행히 이사하는 그 날 이삿짐을 옮기던 때에 비가 그쳤고
좋은 집주인을 만난 것 같다(말씀이나 걱정이 좀 많으신 듯 하지만)

예전 집 창밖으로 가로등이 하나 보였는데
작년 겨울,
온기가 있는 방 안에서 아침을 지어먹으면서
첫눈이 내리는 걸 봤던 기억이 난다
정말 다행스럽구나.. 싶었던.
저녁 가로등불빛을 받아 반짝이는 눈송이들이
무척 아름다웠고, 환상적인 동시에 굉장히 안도감을 주는 실재였다

지금 사는 곳에서는 아직 안도나 안정을 못느끼지만
곧 그렇게 되지 않을까,
벽지도 위화감 없는 꽃무늬고 붙박이장도 있고.
신발장은 없지만 귀여운 세면대 수도꼭지와 샤워기가 있다


여러가지가 좋다
좋게 생각하려는 중이다
연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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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내보이는 연습, 나를 드러내는 연습을 해봐야겠다
진지하게.

머릿속에서 우르르쾅쾅 하는 생각들, 얘기들을
예전엔 블로그로 이리저리 쏟아내기도 했는데
그러면서 스트레스를 풀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냥, 꼭꼭 잠궈두고만 있는 것 같다

어째서일까.
아마 자신을 초라하다고 여기는 순간들이 잦아지던 시절과 맞물리는 것 같다

말을 줄이려고 하다 말하는 법을 까먹어버렸다는 걸 알아버린 어느 날이 떠오른다
이러다 난 존재하지도 않는 인간이 되버릴 것 같다

솔직하고 싶어서, 지인들이 모르는 공간에 모르는 이름으로 글을 쓰는 것이
유일한 숨구멍이었는데. 그 숨구멍을 왜 막아버린 건지 잘 모르겠다

Tags: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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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는 동네. 이사온 지 9개월째.
동네 이름으로 인터넷을 검색하다, 걸어서 5분거리에 있는 카페를 알게 됐다
추어탕, 산채비빔밥, 낙지, 보쌈 등 전통적인 음식점이 골목골목 있는 블럭인데
우리밀로 직접 아침마다 구운 빵에 유기농재료를 사용해서 샌드위치를 만드는
브런치카페가 자리잡고있(었)던 거다

구경이나 가볼까 하고, 영업시간을 물으려 전화를 걸었다
첫번째엔 받지 않았고, 두번째 걸자 주인이 바뀌었고 지금은 공사중이니 일주일쯤 후에 방문해줄 수 있겠냔 답을 들었다
아쉬움..

그리하여 좀 전에 산책 겸 동네 마실을 다녀왔다
이리저리 걸으니 디저트카페도 있고 초등학교도 있고
야식전문배달점도 있고.
그러다 ‘자반고등어 도소매’라고 큼지막하게, 여러번 붙여놓은 가게를 봤다
불은 꺼져있다
‘자반고등어’와 ‘도소매’가 함께 쓰이니, 뭔가 생경했다

이제는 먹지 않지만
고등어는 내가 꽤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고등어반찬은, 내 머릿속에서는,
바다에서 헤엄치다 잡혀서 곧장 밥상으로 오는 것이었다
생선을 파는 시장, 고등어를 고르면 머리와 꼬리를 자르고, 지느러미를 자르고,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고 토막내서 소금을 뿌리는 것.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런 고등어들도 ‘도매’로 시장에 들어와
내가 ‘소매’하는 것이니까.
자반고등어를 ‘도소매’, 한다고 하니
등푸른 것들이 여러개의 커다란 드럼통 같은 데에 가득 들어있고
그걸 손질하는 누군가와
소금을 뿌리는 누군가와
포장하는 누군가.가 한 공간에서 끝없이 일하는 모습이 연상됐다
캔음료나 운동화 같은 물건들 뿐 아니라
그런 음식도 ‘공산품’의 일종이라는 것.

아침에 눈을 뜨면
찰랑이는 물뿌리개를 가지러 화장실에 간다
내 목을 축이기 전에, 옥상 풀잎들에 뿌려주려고.
오늘은 잎들을 좀 따다가 친구와 먹었다
이제 더는 어리지 않지만, 다 자라지도 않은 청소년잎들.

헌데 생각해보면
어린잎도, 누군가는 적당한 어린잎을 종일 수확하고
누군가는 그걸 세척해서 포장하는 이에게 넘겨줄 것이다
그게 전국의 마트 진열대에 올라가고.
일자리 창출 도시화 편리한 삶, 으로 보일 수 있는 것들이
감정적으론 너무 기괴하게 다가온다
내가 너무 비약하는 것일까.

농부가, 어부가, 동물농장이 주는 이미지와
그것들이 거치는 ‘공장’이 연상시키는 것의 차이.
직접 사과나무를 키울 수 없고, 직접 바다낚시를 할 수 없으며,
직접 동물을 사육할 수 없으니까, 이런 삶이 ‘당연’한건데
이런 부분들에 의문을 갖는 게 오히려 좀 ‘이상’한건데

'노동'이 무한히 긍정적이거나 혹은 부정적인 것이 아님에도
직접 사과나무를 키우지 ‘못’하는 삶에서 과연 여유를 가질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아마 ‘착취’와 들러붙어버린 노동현장의 문제일까.

거기에 덧붙여, 사과나무가 열매맺도록 보살피면서 배울 수 있는 무언가를
다른 어딘가에서 다른 무언가를 통해 배울 수 있는걸까, 하는 의문도 생긴다
사과나무를 키우지 ‘않’거나, 사과를 사다먹는 것과는 다르다
나무를 돌보는 데에 재주가 없거나 사과 알레르기가 있다거나 하는 개별적인 상황을 포함한다 해도,
내가 원치않는 단일한 방식으로 움직이는 세상의 효율성이 내 삶에 무엇을 안겨주고 또 무엇을 빼앗아가는지, 그렇지 않은 삶을 살아본 적 없으니 짐작만 해볼 뿐이다
한편으론, 어쩐지 억울한 기분도 들고.

여기까지 이런 글을 쓴 나도 이젠 좀 기괴하게 느껴진다